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유성호 법의학자의 '죽음'에 관한 책이다.
우리는 사실 잘 사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지만, 잘 죽는 것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 편이다. 아마도 당장 지금의 나는 살아있고, 죽음이라는 것은 저 멀리, 그저 막연하게만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우리 삶의 서사의 마지막 종결이 죽음이란 것은 누구나 알고, 또 거스를 수 없는 자연스러운 우주의 질서이다.
현대의학의 발달과 연명의료로 인해 자기 스스로 판단하여 자신의 치료의 향방을 결정하지 못하고, 타의에 의하여 의료 행위의 한복판에서 죽음을 맞는 경우가 많아졌다.
내 생명에 대한 자기 결정권은 보장받지 못한 채, 오롯이 의사나 가족에 의해 내 삶의 종지부가 결정된다는 것은 문제가 크다. 각자의 삶은 각자의 소유이고 스스로가 결정권자가 되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면 죽음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마땅히 스스로 자신의 죽음을 결정하고 맞이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고통스럽고 무의미한 연명의료에, 그것도 내 의사가 아닌 가족의 미련과 양심의 가책에 의해서, 모든 자유의지를 상실한 채 겨우 심장박동을 유지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을 조금의 여유를 갖고 주변을 돌아보며 삶의 마지막을 정리하는 것이 진정 인간다운 죽음일 것이다.
엄격한 절차에 의해 '의사 조력 자살'을 허용하고 있는 나라는 스위스, 베네룩스 3국과 미국의 8개 주, 오스트레일리아의 빅토리아 3주 등이 있다. 이곳에서는 치료 가능성이 없고 자신의 의지가 확고한 경우 스스로가 죽음의 버튼을 누름으로써 죽음을 택할 수가 있다.
벨기에와 네덜란드의 경우 루게릭처럼 거동이 불가능하여 죽음의 버튼을 직접 누를 수 없는 환자를 위해 의료진이 버튼을 대신 눌러 주는 '적극적 안락사'를 허용하고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연명의료 보류 중지 제도는 시행 중이지만, 의사 조력 자살 또는 의사 조력 사망까지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삶과 죽음에 대한 가치관은 각각 다를 수 있으므로 이런 제도의 도입을 도저히 납득하기 어렵고, 논의조차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죽음에 대한 가치관도 변하고 있다.
삶을 의도적으로 중단해도 괜찮은가 하는 문제는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하고, 꾸준히 논란이 될 이슈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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